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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건너 나의시댁

대학교때 단체여행으로 처음으로 가본 제주도.

여러곳을 관광 했겠지만 기억나는 곳이라고는 여미지 식물원, 천지연 폭포와 우도 뿐인데 "아~ 좋다" 그 기억 이상도 이하도 아닌것 같았다.

그러나 잊을 수 없는 딱 한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인상 깊었던 제주공항의 공기였다.

공항을 빠져나왔을 때의 그 습한 공기는 (가보지 않아 잘 몰랐지만) 왠지 동남아 느낌도 있었고, 내가 살던 곳과는 참으로 다른 이국적인 냄새에 매료되었던 기억이 난다. 졸업후 친구들과 떠났던 제주여행때도 역시 나를 처음으로 감동시키는 것은 제주공항의 공기였다.

 

그렇게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제주공항의 세번째 방문은 좀 특별했다.

결혼을 약속한 남자의 아버님(어머님은 안타깝게도 결혼 몇 해전에 지병으로 돌아가셨다고 들었다)께 인사를 드리러 가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그날도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밖을 빠져나가는데 어김없이 나를 맞아주는 제주공항의 공기가 반갑기도 하면서 나를 긴장시키기도 했다.

이차저차해서 그와 결혼을 하게 된지 18년동안 참으로 제주도를 많이도 오갔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나의 4번째 방문때부터는 제주공항의 그 공기가 느껴지질 않는다. 나를 적당히 설레게 하고, 적당히 긴장되게 하고, 적당히 자유롭게 했던 그 공기가 아닌, 육지(제주도 사람들은 흔히 '육지'라고 표현한다)에서 싣고 간 듯 너무나 평범한 공기로만 느껴진다. 그때부터 이미 제주도는 나에게 더이상 이국적인 관광지가 아닌 평범한 '시월드' 였나보다. 딱히 시댁을 싫어하는 것도 아닌데, 사람 마음이라는게 이렇게 무섭다는 걸 또한번 실감한다.

 

어쨌든 해마다 서너번씩을 오가던 그 시댁에 올해는 설날 이후 한번도 가지 못했다. 지난 설명절 제주도에 있을때 TV에서 코로나발생 첫 뉴스를 보았고, 올라오던 날 급히 공항 약국에서 비싼 마스크를 쓰고 비행기를 탔던 기억이 난다.

그런지 벌써 1년이 다되어 가고, 다음 설명절을 기다리고 있는데, 상황은 더욱 안좋아지고 미리 끊어둔 비행기표를 취소해야하는지 고민을 하게 된다. 시아버님이나 시누이와 통화를 하면, 제주도에도 진주 이통장발 확진을 기점으로해서 계속 확산되고 있다고, 절대 오지말라는 이야기만 하신다. 어쩌면 아이들이 한참 어릴때였으면 핑곗김에 그러겠노라 쉽게 말했을지도 모르겠다. 두 아이의 며칠 분량 두꺼운 겨울짐을 캐리어에 나눠 담고, 비행기를 타고 오가는길이 힘겨울때도 많았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각자 캐리어 싸기의 달인이 되어, 신경쓸일이 없지만 말이다.

2년전 육지(^^)에 오셨을때 합천 청와대세트장안 포토존

그런데 올해는 이 상황이 너무나 속상하고 마음이 천근만근이다. 점점 나이 드시는 시아버님도 꼭 뵙고 싶고, 볼때마다 쑥쑥 커가는 아이들을 보시면 참 좋아하실텐데 그럴수 없게될까봐 속상할뿐이다. 겉으로는 투박하고 강하시지만 속으로는 손주사랑이 둘째라면 서러우신 분이라는걸 알기에 더욱 그렇다. 과학적으로는 가능성이 없겠지만, 어느날 갑자기 이 바이러스가 사라지는 기적이 일어나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