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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내가 가는 날에..

nayoung22 2020. 12. 9. 23:25

 

 

"여보(사실은 오빠라고 함)! 내가 혹시 당신보다 먼저 가게 되면~ 내 관에는 쌀 말고 커피 몇 알만 넣어줘~ 알았지?"

며칠 전 저녁 뜬금없이 그에게 한말이다.

테이블에 앉아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던 남편은 황당한 웃음을 지으며 쳐다본다.  "갑자기?"

"내가 잘 깜빡깜빡하니까~ 생각났을 때 얘기 하는거야~ 알아두라고~^^". "어~알겠어.ㅎㅎ"

짧게 끝낸 뜬금없는 이야기였지만 솔직한 심정이었다.

 

사실 커피에 대해서는 아는게 거의 없다.

원두에 대한 상식도, 원산지에 대한 정보도, 맛의 차이도 잘 모른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커피를 참 좋아한다. 

맛있는 밥 한끼 먹었을때보다 맛있는 커피 한잔 마셨을때의 짜릿함이 더 좋을때가 많다.

맛없는 밥 한끼 먹었을때보다 맛없는 커피 한잔 마셨을때의 아쉬움이 더 크다.

커피가 맛있다는게 뭔지는 모르지만..

그저 찻잔 입구에 닿는 느낌, 입안에서 느껴지는 가득한 맛과 향, 걸림없이 목에 부드럽게 넘어가는 그 느낌, 그리고 목넘김후에 코끝에 남아있는 커피의 잔향에 매료될 뿐.

 

연인들에게 좋아하는 이유를 물어보면 '그냥 다 좋다'는 말이 이럴때 나오는게 아닐까?

좋아한다는것에는 어떤 특별한 조건이 없어도 가능한 것일테니까 말이다.

요즘은 거의 1일 1드립에 행복을 느끼는 중이다. 그런데 드립에 필요한 도구도 변변치 않다.방법도 잘 모른다.

몇해 전에 사놓았던 드리퍼도 이제야 꺼내고, 필터와 드립포트는 최근에 급하게 구입을 했다.

어떤 상품이 좋은 건지는 모른다. 며칠 커피를 내려보니 왜 서버가 필요한지 알겠다. 곧 또 주문을 하겠지..

아! 그라인더도 필요하겠네.. 뭔가 완벽하지 않아도 좋다. 커피만큼은 내 만족에 만족하고 싶다.

그 나만의 만족을.. 마지막 길 가는길에도 천천히 음미하고 싶어서 그 뜬금없는 말을 꺼내지 않았을까?